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에 사는 황철수(80·가명) 할아버지는 올해 초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이다. 산책하듯 거리를 돌며 혹시나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겠다 싶은 위험물이 있는지 살피는 게 그의 임무. 한 달에 12일간 일하고 20만원가량 받는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그에겐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만성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어 방에서만 지내는 날이 많았던 그다. 하지만 지난해 9월부터 주민들과 함께하는 걷기 동아리 활동이 그의 삶을 바꿨다. 처음엔 20~30분을 느리게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매주 3회, 한 번에 한 시간가량 동네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 해운대구 재반보건지소 최경희 주무관은 “구청 주도로 시작된 건강한 마을 만들기 덕에 주민들의 삶이 긍정적이고 건강하게 바뀌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중앙SUNDAY가 공동 기획한 ‘2014 전국 지자체 평가’ 결과 전국 230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주민들의 건강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부산 해운대구(4.0413)가 뽑혔다. 원동력은 ‘건강한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지역 주민 간의 유대관계를 강화해 지역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을 끌어올리는 걸 목적으로 한다. 정연희 해운대구 보건소장은 “기존의 보건사업들이 개인에 초점을 뒀다면 건강한 마을 만들기는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에 보다 관심을 둔다”며 “마을 환경을 건강하게 바꾸면 주민 전체의 건강과 수준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마을 만들기는 2007년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시작됐다. 이곳은 이웃들 간 교류가 비교적 활발하지만 주민의 건강 수준은 취약한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구청과 지역 내 복지관은 주민들의 협력을 받아 주민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걷기 동아리 활동이다. 1530(일주일에 5회, 30분 이상씩) 걷기 동아리는 현재 11개가 활동 중이다. 지난해 동아리 참여 인원은 총 6134명에 달한다. 제주의 올레길 같은 걷기코스도 꾸준히 개발해 현재 지역 내에 9개 구간을 갖추게 됐다. 해운대구 홍보팀 조미숙 주무관은 “반송동은 해운대구에서 가장 자존감이 낮은 지역이었지만 건강한 마을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주민 건강이 좋아지는 건 물론, 지역 사회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엔 반송동 주민이 ‘살기 좋은 내 고향 반송이 최고’란 노랫말의 반송 찬가를 작곡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실제 이 사업으로 주민 간의 정이 두터워지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다른 주민을 돌보는 건강 지킴이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주민이 120명에 달한다. 해운대구는 건강한 마을 가꾸기 사업 외에 건강 인프라를 갖추는 데도 투자하고 있다. 체육·건강관리 시설이 부족했던 반송·반여동 주민들을 위해 58억원을 들여 2009년 개관한 해운대구건강증진센터가 대표적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4163㎡)의 센터는 예방보건을 목적으로 지어진 전국 최초의 종합체육시설이다. 수영장과 헬스장, 에어로빅 교실 등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다. 아쿠아로빅 등 50여 가지 프로그램을 월 1만원가량만 내면 수강할 수 있다. 연 이용자 수는 4만 명에 이른다. 구청이 척추 건강 체조 만들기도
기초생활수급자 등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드림스타트센터도 운영 중이다. 센터엔 어린이들이 쉴 수 있도록 실내 놀이터와 새마을문고, 청소년 쉼터 등이 설치돼 있다. 또 전문상담사가 상주해 청소년들에게 심리상담을 해주고 있다. 이들은 지역 내 어려운 아이들이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밑반찬을 만들어 가져다 주거나, 외식을 시켜주기도 한다. 해운대구는 보통 자치구청이 생각하지 못하는 일도 하고 있다. 해운대구가 2012년 개발한 ‘써니퍼니’ 체조가 대표적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으로 인해 아이들의 자세가 바르지 않다’고 고민하는 구민이 많다는 데 착안해 구청이 내놓은 대책이다. 해운대구는 2012년 관내 척추 전문병원·재활전문병원 등과 업무 협약을 맺고 한 달여 만에 체조를 만들어냈다. 이 체조는 현재 관내 52개 초·중학교에 보급돼 있다. 해운대구는 지난해 부산시 자치구 중 최초로 자살예방전담부서(정신보건팀)도 만들었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해운대구 보건소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주관 ‘2013년 건강증진사업 성과대회’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정연희 보건소장은 “건강을 각자 챙겨야 할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지역 사회의 협조를 바탕으로 구청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게 건강한 해운대구를 만들어낸 비결”이라고 말했다.
광역지자체 건강 만족 1위는 대구
건강 만족도 평가 결과 2위는 쾌적한 정주 여건을 갖춘 서울 서초구(3.9808)가 차지했다. 이어 부산 연제구(3위·3.9330)와 대구 북구(4위·3.9233), 인천 연수구(5위·3.9224)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건강 만족도의 도농 격차는 크지 않았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도농 간 차이가 벌어졌다. 예컨대 군 단위에 거주하는 60대 이상의 건강 만족도 평균은 2.9386점에 그쳤지만 같은 연령대의 대도시 자치구 응답자 평균은 3.3236점에 달했다.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군 지역에 노인 인구가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광역지자체 중 건강 만족도 1위는 대구(3.7316)였다. 이어 인천(2위·3.7147), 울산(3위·3.6910), 경기도(4위·3.6831)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건강 만족도는 광역지자체 중 6위(3.6732)였다. 의료시설 만족도 도농 격차 커
건강 만족도와 함께 조사한 의료시설 만족도 전국 1위 지자체는 서울 송파구(3.9789)였다. 송파구에는 서울 아산병원과 국립경찰병원 등 대규모 병원은 물론 크고 작은 병·의원(총 833개)들이 고르게 갖춰져 있어 높은 만족도를 받는 배경이 됐다. 이어 서울 서초구(3.9616)와 강남구(3.9486)가 나란히 2, 3위를 차지했다.
의료시설 만족도는 도시 지역이 농어촌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만족도 상위 20위 지자체 중 군 단위 지역은 전남 화순군(6위·3.8504)이 유일했다. 화순군엔 13개 암클리닉과 26개 진료과를 갖춘 전남대 부속병원(화순전남대병원)이 있다. 의료시설 만족도의 경우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 격차도 컸다. 대도시 자치구(69개)의 만족도 평균은 3.4019점인 데 비해 일반 시(78개)의 평균은 군 단위 지역(83개·2.8264)보다 다소 높은 2.9601점에 그쳤다. 김병섭 교수는 “도농 간 의료시설 격차가 만족도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런 경향은 광역지자체 단위의 의료시설 만족도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16개 광역지자체 중 의료시설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은 광주광역시(3.5649)로 집계됐다. 이어 부산(2위·3.5199), 대구(3위·3.4966), 서울(4위·3.4536) 순이었다. 대전(3.3897)은 5위였다. 광역지자체 상위 1위부터 5위를 특별시나 광역시 같은 대도시들이 독식한 것이다.